성공스토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2월 16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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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창업 청년들 성공스토리]
⑦순천 러프티하우스 신선미 대표
러프티하우스 전경

‘우영우’는 불편하지 않다

의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드라마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대표적으로는 ‘장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대한 ‘우려’와, ‘판타지’인 드라마에 과도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실제로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우영우를 보며 ‘힐링’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선한 모습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같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임에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요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지 않다. 왜 그럴까? 그건 가 시스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영우는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타인을 돕는다. 우영우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로 비치며, 라는 드라마를 일종의 ‘성공신화’로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우영우는 정말 장애를 ‘극복’했을까? 아쉽지만 그렇게 해석될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갑자기 어리숙하지 않게 똑바로 말하거나, ‘각성’이나 ‘변신’이나 ‘환골탈태’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고래와 김밥을 좋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태어난 대로 살 뿐이다.

그렇다. 그는 언제나 ‘우영우’로 존재하고, ‘우영우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연히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고, 그 기억력이 기존 시스템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을 뿐, 그가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묘사는 없다. 오히려 드라마 전반에서 그가 극복하고자 하는 건 ‘장애’가 아니라, 언제나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현실’이었다.

의 주제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자 분투하는 투쟁기’에 가깝다. 회전문 앞에서 우영우가 발걸음을 멈추는 장면이 이러한 주제를 성공스토리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형 빌딩의 냉방과 보온에 유리한, 효율성과 기능성에 중점을 둔 입구에서 ‘장애’는 멈춘다.

드라마에서 장애인으로 묘사되는 우영우는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극적인 노력으로 극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해당 장면에서 부각되는 건 ‘이준호’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함께 발을 맞추며 문턱을 넘어서는 타인의 호의 그리고 대형 빌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입구’에 대한 필요성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다수 장애인은 시스템 안에 편입될 수 없다. 우영우처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이들도,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도,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도 회전문을 혼자 넘어갈 수 없다. 그들이 최소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보완·수정하자는 ‘다른 입구’에 대한 요구는, 효율성과 기능성이라는 문턱에서 멈춘다.

는 불편하지 않다. 드라마 속 인물 ‘우영우’도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그로 인해 투영되는 자리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는다. 그곳에는 사회 시스템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장애인 ‘우영우’도, 함께 문을 넘어설 비장애인 ‘이준호’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논쟁해야 하는 대상은 드라마가 아니다. 옹호해야 하는 것도 드라마가 아니다. 정말로 이야기되고 바뀌어야 하는 건, 극복되어야 하는 건 드라마 밖의 ‘현실’이다.

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과 보폭을 맞추고, ‘다른 입구’를 함께 요구할 수 있다면, 드라마는 단순한 ‘힐링’을 넘어 타인을 환대하고 포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문턱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말이다.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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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7) 용역방식 반드시 재검토…도민 동의안 마련 위한 토론이 우선

오영훈 도지사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공약했다. 구체적으로는 제주도를 5~6개 정도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누고, 기초자치단체의 권력 구조는 기관통합형으로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일정과 관련해서는, 임기 초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4년 후 지방선거에서는 도민들의 손으로 기초자치선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기초자치단체 부활, 원칙부터 세워야

우선 오영훈 도지사가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의지를 밝힌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부활 논의가 처음이 아닌 만큼,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은 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기초자치단체 부활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중앙을 설득할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은 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을수록 중앙정부에 대한 설득력과 협상력이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낮다면 중앙과 협상 과정에서 ‘도민들도 의견이 갈라지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지도에 선 긋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문화/지역특성 기반해야

둘째, 인위적으로 지도에 선 긋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문화, 제주의 특성에 기반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진국에 가까운 지방자치를 했던 때는 1961년 5.16. 쿠데타 성공스토리 이전이었다.

그때는 도시지역은 시(市) 단위에서, 농촌 지역은 읍·면 단위에서 지방자치를 했다. 그것이 유럽·일본·미국에서 하고 있는 지방자치 모델이다. 독일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 스위스의 코뮌, 일본의 정(町)·촌(村) 모두 우리의 읍·면 정도 규모이다. 스위스의 경우에는 인구가 1천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모범적인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의 경우에는 읍·면의 인구가 육지부와 비교하면 매우 많은 편이다. 육지부의 경우에는 인구가 2천명이 안 되는 면이 수두룩하다. 인구가 작은 군의 경우에는 통틀어서 2만~3만명 남짓 수준이다. 그런데 제주의 경우에는 애월읍, 조천읍, 한림읍, 대정읍 등 인구가 2만명이 넘는 읍들이 많다. 육지의 웬만한 군(郡) 수준의 인구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5~6개 수준으로 ‘인위적인 선 긋기’ 방식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5~6개라는 것은 역사·문화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인 근거도 없다. 읍·면의 인구가 많은 제주의 특성에도 맞지 않는다.

필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시지역은 시(市) 단위 자치를, 나머지 읍·면 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자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도시지역의 동장은 주민직선제로 뽑고 주민자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단위 근린자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은 활발한 토론을 위해 제시하는 개인적 의견이다.

이것이 중앙을 설득하는데 불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지방자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읍·면 자치권 부활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하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도 읍·면 자치권의 부활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특별자치를 하는 제주도가 지역 특성에 맞춘 기초지방자치를 하기 위해 읍·면 자치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용역이 아니라 범도민적 토론이 필요

셋째, 용역이 아니라 범도민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주의 경우에는 일부 전문가들이 용역을 맡는 방식으로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해 왔으나, 이런 방식으로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 오히려 여러 방안을 놓고 도민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의회와 집행부가 협의하여 범도민적 토론을 진행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언론이나 시민사회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도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숙의민주주의 방식’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기본조례’도 제정되어 있다. 이런 조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기초자치단체 부활방안이 정리되고 좁혀지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용역을 한다고 하니 매우 우려스럽다. 용역과정에서 주민참여나 의견수렴을 한다고 하나,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용역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부디 기초자치단체 부활 문제가 이번에는 제대로 논의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원칙들부터 토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폭넓은 공감대 위에 로드맵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기초자치단체 부활 논의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하승수 변호사는?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성공스토리

[농촌 창업 청년들 성공스토리]
⑦순천 러프티하우스 신선미 대표
러프티하우스 전경

[농촌 창업 청년들 성공스토리] ⑦순천 러프티하우스 신선미 대표

순천 선암사의 산기슭에서 만난 마흔네 살의 젊은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차와 함께 자라며 평생을 차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 일을 도왔으니 차와 함께한 시절이 어느덧 3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밭에서 뒹굴고 있는 그 주인공은 러프티하우스의 신선미(44·사진) 대표다. 그는 "차(茶)는 나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항상 되뇌며 살고 있다. 한 평생 차와 함께한 신 대표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학 공부 위해 일본행… 차에 빠져

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신 대표는 어학 공부를 위해 졸업 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도 문화가 널리 퍼져있는 일본에서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유학 생활을 하던 신 대표는 차에 빠지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일본에는 다도 문화가 확산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발효를 하지 않는 불발효차가 잘 정착돼 있었다"며 "어학 공부도 하면서 일본 곳곳을 다니며 차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고 말했다.

신선미 대표가 일본 유학 생활 당시 현지에서 열린 차 박람회에서 차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다.

그는 일본 유학 생활을 하며 현지에서 열리는 차 박람회, 차 강의 등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원래 차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 보다 월등히 많았지만 일본에서 차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니 정말 빠지게 됐다"면서 "일본의 차에 대한 공부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 경험이 지금 돌아보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차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버지가 전통식품명인 18호

사실 차는 신 대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버지가 신광수 차 명인이기 때문이다.

신 대표 보다 먼저 '차의 인생'을 걸어온 아버지 신 명인은 50여년의 수제차 제다 경력을 인정받아, 지난 1999년 '전통식품명인 제18호'로 지정됐다.

신광수 차 명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식품명인은 전통식품의 제조, 가공, 조리방법을 원형 그대로 보전해 시현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지정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명인이 아버지로 계시니 신 대표는 어릴 때부터 차를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 대표는 "지금은 그런 불만이 없지만 학창 시절에 아버지 일을 항상 도와줬는데 너무 힘들고 하기 싫었던 것 같다"며 "매년 4월초부터 6월말까지는 학업을 제치고 아버지 일을 우선적으로 도왔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차 걸레를 빨고 차를 뜨거운 열에 덖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그래도 대학생이 되고 진로를 결정해야 될 때가 왔을 때는 자연스럽게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 대표는 명인 아버지를 잇는 전수자로 지난 2005년 정식 등록됐다.

스틱티백

◆위기는 곧 기회… 센스 넘치는 마케팅

신 대표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잇는 전수자로서 '차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위기로 인해 사업자 대표가 됐다.

지난 2007년 한 방송에서 농약을 차밭에 뿌리는 장면을 보도한 이후 차의 인기는 곤두박질쳤다. 처음에는 해당 업체만 타격을 보겠거니라고 생각했던 게 점차 일이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차 업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하고 전혀 상관없는 방송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영향이 받는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었다"며 "당시 매출이 반토막이 아니라 그 이상 떨어지면서 적자까지 생기는 상황으로 상당히 심각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신선미 대표가 다도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차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다.

그때 신 대표는 낙담하지 않고 살 길을 찾다가 일본 유학시절 인맥을 동원했다. 당시 박람회와 강의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현지에서 열리는 차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신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항력적으로 매출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돌파구를 찾다가 일본을 떠올렸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며 "그때 참여한 차 전시회를 통해 일본 현지에 수출할 기회가 생겨 매출도 점차 회복할 수 있었고 매출 1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위기를 극복해낸 그이지만 위기는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지진이었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도후쿠 지방에서 4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35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지진·해일로 일본의 수출이 전부 끊겼다.

이처럼 겨우 벗어난 위기에 또 성공스토리 한 번 고난이 찾아오자 신 대표는 공황장애까지 겪었다. 그렇게 자포자기하고 있던 신 대표를 구해준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신 대표는 "몇 년 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주위에서 전남농업기술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들어보라고 조언했는데 처음에는 시큰둥 하다가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수강신청을 하고 교육을 듣게 됐다"며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교육을 들으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고 강조했다.

이 교육을 듣고 무엇인가 깨달은 신 대표는 전남농업기술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닥치는 대로 신청해 수강했고 이후에 '러프티하우스'라는 차 납품 업체를 차리게 됐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만 판매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활동에 나섰고 제품 개발에도 힘썼다.

스틱티백

일반 티백보다 편의성과 환경성 등을 업그레이드한 스틱 티백을 만들어 홍보를 시작했고 소위 대박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의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 100여곳에 납품하고 있으며 매출은 안정을 되찾았다.

◆마시는 차 넘어 '치유의 차' 바라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성공한 청년 농업 사업가로 거듭난 신 대표의 최종 꿈에 대한 키워드는 '치유 농업'이다.

그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지만 녹차 분말을 가지고 녹차 스프레드 만드는 체험 키트 등을 개발하며 또 한 번 차로 위기를 이겨냈다"며 "차와 함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낸 내가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차로 치유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신 대표는 현재 가지고 있는 차밭에 지상 2층 101평 규모의 체험 시설을 건립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녹차 피자 체험, 다도 체험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선미 러프티하우스 대표

신 대표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차밭이나, 현재 건립 중인 체험 시설 모두 자연 속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직까지는 부족하지만 차를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치유될 수 있는 차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진할 계획이다"고 힘줘 말했다.

[Startup’s Story #474] 김혜연 엔씽 대표 “세상을 먹여 살리는 기업 만들겠다”

스타트업 창업이 권장되는 추세지만 존속하는 기업보다 폐업하는 기업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 5년 생존율이 30% 전후라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회사가 오랫동안 온전히 존재하는 것은 확률이 낮다.

이런 상황에서 창립 9주년을 향해 가는 애그테크 기업 ‘엔씽‘은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단순히 오래 생존하는 것을 넘어 피봇팅을 거치며 새로운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엔씽이 전개하고 있는 모듈형 컨테이너형 수직농장은 농업의 관점을 소비자 중심으로 이동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곳으로 안정적이고 신선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밸류 체인을 지향하고 있어, 식량 수급 이슈와 팬더믹 상황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14년 창업 초창기에 이어 엔씽 김혜연 대표를 인터뷰이로 다시 만났다.

엔씽 김혜연 대표 / 사진=N.THING

엔씽이 설립된지 8년을 넘어 9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해주세요. 왜 창업자가 됐나요. ‘애그테크(Agtech : agriculture technology)’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이 분야 사업을 시작했어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뭔가 일을 만드는 것을 그냥 좋아했어요. 환경의 영향도 있었다고 봐요.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한 것으로 인해 경제적인 부분에 결핍이 있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작은 가게를 여시고 그 결핍을 없앴죠. 집이 경제적으로 확 나아지는 걸 체감했고, 어린 마음에 ‘사람은 사업을 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웃음)

20대 때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자’가 제 모토였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도전했어요. 그중에 하나가 농업 회사에서 일하는 거였는데, 운 좋게 우즈베키스탄에서 조인트벤처도 만들고 토마토 농장도 직접 맡아 진행했죠. 그때 농업에 기술만 잘 적용하면 정말 큰 산업이 될거라 판단했어요.

벤처마킹할 곳도 없었고 농업 전문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개발자들이 모여 시작한 거였어요. 2013년 6월쯤에 팀이 모였고, 2014년 1월에 회사를 설립했고요. 처음 시도했던 것이 스마트 화분인데, IoT 기반으로 화초를 키우는 거였죠. 그때 개발했던 센서와 데이터 등을 취합하는 플랫폼으로 그뒤 농업쪽에서 여러 시도를 했어요.

피봇팅을 거쳐 스마트팜이 현재 주력 사업이 됐어요. 스마트팜 아이디어는 어떤 과정에서 나온 건가요?

2016년에 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자체 개발한 센서를 설치해 딸기를 키워봤는데, 농업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보이더라고요. 가장 큰 한계는 우리가 원하는 환경을 비닐하우스에서는 구현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좀 더 깨끗하게 작물을 키우고, 우리가 원하는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다 컨테이너 안에서 작물을 키워보기로 했어요. 컨테이너 한 동에 N.F.T. (Nutrient Film Technique) 수경 재배 기반으로 IoT 센서, 컨트롤러와 같은 것들을 붙인 환경을 구축했죠. 그렇게 해서 2017년 컨테이너 기반 프로토타입의 스마트팜을 선보이고, 2018년도에는 세 동으로 늘려서 채소를 재배하고 수확까지 하는 기반 시설들을 만들었죠.

스마트팜은 완성차 공정과 비슷해요. 하나의 팜에 온갖 기술과 부품이 들어가죠. 저흰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다 개발해서 적용했어요. 시장에 적합한 제품이 있었다면 그런 고생을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원하는 게 기존 제품에는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스마트팜에 맞는 Led, 모듈, 센서, 컨트롤러를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게 엔씽의 핵심 기술이 됐어요.

2019년도에는 양을 조금 더 늘려서 용인에 열 동짜리 농장을 운영하며 R&D와 생산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식재료를 중요시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수요도 발생했죠. 이후 준비가 성공스토리 되었다 싶어서 경기도 이천에 연간 100~120톤 정도 생산이 가능한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판매하는 친환경 로메인 1인분 기준으로 보면 100만 인분 규모입니다.

스마트팜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어요.

시장 환경이 몇년 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우호적으로 바뀌었어요. 어떤 산업이든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2019년 까지만 해도 대중이 지금처럼 스마트팜을 알지는 못했어요.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에서 키우는 것이 낫다는 인식도 있었고요. 기후 변화 등 환경위기와 코로나 펜데믹 이슈가 터지면서 그런 선입견이 바뀌었죠. 덕분에 저희가 생산하는 작물에 대한 선호도도 함께 높아졌죠.

예전에는 스마트팜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농가의 반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사실 농가에 계신분들이 농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저희에게 연락을 많이 주세요. 농사 짓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을 분들도 없다고 하세요. 기후 변화로 타격을 입은 농가에서 스마트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죠. 과거 금융권도 스마트팜 산업을 크게 주목하진 않았어요. 좋기는 한데, 꼭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관계자들이 스마트팜의 필요성을 깊게 인지하고 있어요. 농업 분야에 하나의 산업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요.

2019년 엔씽이 경기도 용인에 구축한 모듈형 스마트팜 단지. 애그테크 산업에서 엔씽이 선보인 스마트팜은 큐브 농장과 수경 재배 방식 수직 농장(vertical farm) 시스템이다. 큐브 농장은 직육면체 모양의 컨테이너 설비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외부 환경과의 단절을 통해 환경조건을 관리자가 원하는 조건으로 제어한다.특이점은 엔씽은 이러한 기술 대부분을 자체 개발해 내재화했다는 것이다. / 사진=N.THING

엔씽에서 운영하는 수직농장(큐브)은 자동운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자동화된 건가요.

엔씽의 수직농장은 환경에 대한 컨트롤을 모두 원격으로 할 수 있습니다. 생육환경을 조정해서 크기나 맛, 식감도 조정할 수 있어요. 유전자를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꿔 식물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사람에 비유하자면 식단을 다르게 하고 운동하는 방법이나 습관을 변화시키는 거죠.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바꿔서 건강한 식물의 재배활동을 조절하는 겁니다. 씨앗을 심거나 수확하는 등 자동화 설비를 집어넣어 자동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농업은 생산자 중심의 산업이에요. 엔씽은 소비자 중심으로 무게를 이동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기존의 농업은 생산자 중심의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일단 농장물이 나와야 그 다음이 연결됐으니까요. 저희는 기술을 통해서 소비자 중심의 농업 또는 푸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해요. 때와 장소,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에요. 그걸 ‘제품화된 농장( Farm as a Product )’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환경에서 생산하든 균일한 품질로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을 성공스토리 할 수 있도록 규격화하는 거죠.

저희가 바라보는 농업의 미래는 일종의 콘텐츠업이기도 해요. 보통 농업인을 떠올리면 끝이 없는 노동이 연상돼요. 향후 기술 기반의 농업이 되면 땡볕에 나가서 밭일을 하는 고생스런 모습이 아니라, 작물을 잘 키우는 것을 고민하는 컨텐츠 큐레이터와 같은 모습이 농부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떤 사람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거나 리드하면 그 자체가 아이콘이고 유행이 되잖아요. 엔씽도 스마트팜에서 새로운 기준이 되려고 합니다.

다른 창고형 스마트팜 회사들과 엔씽의 다른점, 차별점은 뭘까요.

코어가 되는 기술은 물론 스마트팜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직접 한다는 것이 경쟁력의 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규모 확장도 가능해 졌고요. 작물을 재배하려면 하드웨어 설비들이 받쳐줘야지 가능해요. 저희는 원하는 작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라인 자체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외부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데이터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개발했고요. 중요한 건 그걸 가지고 운영을 어느 성공스토리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 일 거예요. 엔씽은 처음부터 시스템을 규격화하고 모듈화해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개념을 기술로 적립해왔어요. 전 세계적으로는 저희 모듈화 개념을 따라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겼고요.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업이라고 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로 진출이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더 크게 성장했다고 들었어요. 배경에는 뭐가 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단기적으로 지연된 부분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 많이 단축됐죠. 각국 정부나 기업, 금융 기관들이 농업 벨류체인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래 걸릴 수 있는 의사결정들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요. 특히 중동을 비롯해 농업 비중이 크지 않은 국가들이 식품 벨류체인을 성공스토리 스스로 확보하는 것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될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외와 국내 사업 비중은 어느 정도로 배분하고 있나요.

기업은 우선적으로 본진에서 잘 해야 해외서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한국에서 하는 프로젝트들은 해외에서 레퍼런스가 돼요. 대한민국은 농업을 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예요. 여름엔 덥고, 비도 많이 오고, 습하죠. 겨울에는 반대로 무척 춥고 건조하고요. 국토가 옆으로 길면 위도라도 비슷해서 기온이 비슷할 텐데, 위아래로 길다 보니 기온 차이도 많이 나요. 게다가 70%는 산이고, 어떤 산은 높고, 어떤 산은 낮아요. 남쪽 끝에는 큰 섬도 있고요. 농업을 하기에 변화 요소가 많기에 기술기반의 농업이 꼭 필요한 나라이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의 성공사례와 경험이 해외서도 의미가 있어요.

얼마전에 압구정에 카페(식물성 도산)를 오픈했어요. 스마트팜을 알리는 쇼륨 성격으로 보여요.

스마트팜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정립하고, 제품의 브랜드화를 고려한 시도입니다. 저희 사업 대부분은 B2B지만 최종 소비자인 대중에게 비춰지는 인식이나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이곳에서 스마트팜 시스템도 보실 수 있고, 판매되는 채소도 사실 수 있고, 샐러드와 음료도 마실 수 있어요. 걱정이 많았는데 오픈을 하고 나니 직접적인 소비자는 물론이고 여러 미디어, 다른 업종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있어요.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엔씽의 IoT 쇼룸 ‘식물성 도산’ 내외부 모습. 엔씽은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스마트팜 채소를 판매한다. 식물성 도산은 소비자와 스마트팜의 일상 접점을 넓힌 디자인 우수성을 인정받아 iF 디자인 어워드 2022 본상을 수상했다. ⓒ 플래텀

창업자는 고민도 많고 외로운 위치입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요. 지난 창업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했나요.

개인적으로 기업이 성장할 때 오는 진통에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정체되어 있거나,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할 때가 압박이 컸죠. 힘들때는 저희보다 조직이 살짝 크거나 저희보다 조금 더 사업을 많이 한 대표님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렇게 들은 직접적 조언이 어려움을 벗어나는데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사람과 조직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냥 기본이죠. 창업자는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고민의 깊이가 다른 것 같아요. 맛도 단맛, 신맛, 짠맛 이렇게 여러 개 있듯이요. 스트레스가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성장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겠죠.

지난 8년 간 번아웃이 온 적은 없었나요.

번아웃은 로켓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켓이 1단계, 2단계 계속 분리하면서 연료를 태우잖아요. 저는 번아웃이 올 때 일로써 일을 태워 버리려고 했어요. 일로 생긴 스트레스나 번아웃을 일로 해소하는 거죠. 문제가 생길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원인을 없애는 거잖아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이 많으면 그걸 다 해버리면 되는 거죠. 다만 이게 정신적인 부분에서 좋은 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일을 하면 할 수록 더 많은 일이 생기기는 하는데, 창업자는 일을 만드는 사람인 거잖아요.

스타트업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다반사에요. 보통 위기의 시기에 사람이 많이 떠나기도 하고요. 초기에 비해 지금은 조직관리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요.

저희가 제품에 대한 사업 방향을 바꾸는 위기의 시기가 있었어요. 20명 정도 되던 팀 규모가 8명으로 확 줄었죠. 그 뒤부터 4-5년 동안은 아주 천천히 팀원을 늘렸어요. 2020년에 15명 정도였으니까 4-5년 보수적으로 늘린 거죠. 이후에는 팀원이 늘어서 현재 70여명 정도 조직이 됐고요.

20명 정도까지는 그냥 제가 다 직접 전달하면 됐어요.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인사 조직과 중간 리더들이 생기는 구조가 됐어요. 또 전달하는 메시지도 구분해서 내보내야 했고요. 회사도 하나의 인격체에요. 질풍노도 시기의 청소년과 성인은 대하는 방식이 달라야 하죠.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을 할 때 성장통이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를 잘 모르고 몸만 커버리는 거죠. 청소년기에 바로 대학생이 되어야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하면 당황스럽겠죠. 다행스럽게도 엔씽은 비교적 균형점을 잘 잡고 그 위기를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여담이지만, 저를 포함해 공동 창업자가 세 명있는데, 초창기 몇 년간은 일주일 내내 붙어 있다 보니까 크고 작게 엄청 투닥거렸어요. (웃음) 지금은 눈빛만 봐도 어떻다는 것도 알 정도로 상호간의 신뢰가 많이 쌓여 있지만요.

기업이 성장하면 기업문화를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엔씽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조직이 작을 때는 그냥 하면 됐어요. 제가 결정하는 방향성에 의문이 있어도 실적으로 보여주면 납득해 줬고요. 지금은 좀 더 큰 방향성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요. 무리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목표 설정을 하고 그것을 이뤄내는 경험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기업을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미 있는 일을 즐겁게 해 나가는 것도 있을 겁니다. 하기 싫은 일을 월급 받으려고 하는건 불행한 거잖아요. 인재들에게 일과 놀이는 거의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고 봐요. 정말 즐거운 일, 의미 있는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요.

스타트업에 걸맞는 인재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엔씽은 어떤 인재를 원하나요.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인성이 좋고 팀과 화합하고 본인 직무에 대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죠. 말해놓고 보니 찾기 어려울 수 있겠네요. (웃음) 좋은 분을 채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들이 들어온 이후 팀과 융화시켜 성과를 잘 내게 하는 회사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려면 고정관념을 조심해야 해요.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토대로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열려 있는 사고가 필요해요. 아울러 버티는 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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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대표가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서비스 설명을 하고 있다. ⓒ 플래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까지 왔어요. 창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제가 뭐라고 그런 조언을 할 수 있겠어요. 다만 제가 대학생 대상 강연에서 자주하는 말이 ‘창업 하지 말라’는 거예요. 창업을 권하는 사람은 창업 안 해본 사람밖에 없다잖아요. (웃음) 저도 창업을 하기 전에는 이 일이 힘든지 몰랐어요. 창업은 개인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요. 무언가 시도해서 성공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있겠지만, 개인의 삶이나 친구, 가족, 심지어 건강까지 포기해야 되거든요.

20대에게 굳이 조언한다면 어떤 기회든 찾아오면 다 해보라는 거예요. 자신이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지를 그 과정에서 캐치할 수 있어요. 그러한 것들이 연결되어서 직업이 되고 창업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알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8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저는 하겠죠. (웃음) 하지만 타인에게 추천은 못 하겠어요. 스타트업을 해서 성공하는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잖아요. 정말 창업이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할 수도 있어요. 실패한 뒤 훌훌 털고 일어나는 일이 쉽지 않아요. 자존심에 상처입고 엄청난 무력감이 찾아오죠. 대부분 창업자들은 성공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도전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존감이 무참히 짓밟히거든요. 대다수가 실패하는 걸 어떻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겠어요. 저는 생각을 많이 안 했기에 창업을 할 수 있었어요. 생각이 많아지면 대부분의 결정은 ‘No’에요. 너무 많이 알면 시작을 못 하게 되더라고요.

엔씽의 장단기 목표는 뭔가요. 그리고 어떤 브랜드, 기업이 되길 바라나요.

일단 단기적으로는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것이에요. 수치적으로는 지금 연간 100톤 규모인데, 2000톤 수준까지 생산량을 올리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저희의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폭넓게 인식되게 하는 겁니다. 엔씽의 비전은 ‘세상을 먹여 살리는 기업이 되자.’에요.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먹거리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애그테크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저는 이 산업이 아직 초창기에 있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해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지만 완벽한 것을 목표로 이 사업을 하려고 해요.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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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미국 연구진이 사상 처음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의 심장을 말기 부정맥 환자에게 이식한 것을 계기로 이종이식 임상시험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중심으로 이종이식 임상시험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9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표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이종장기 임상시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FDA은 지난 6월 성공스토리 열린 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종장기 연구의 발전을 위해 임상시험을 장려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앞서 FDA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돼지 장기 이식 임상시험을 허용할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이종이식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종이식 제제 원료동물의 안전성 입증과 이종이식제제의 성공스토리 관리기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부터 첨단재생바이오약법이 시행되면서, 인공장기 기술 임상연구에 대한 근거가 마련됐다.

이종이식은 종이 다른 동물의 기관이나 조직을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체중이 60~80kg로 사람과 비슷한 미니피그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종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사례는 지난해부터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메디컬센터에서는 뇌사자의 생명유지장치를 떼기 전 돼지의 신장을 혈관에 연결해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센터에서 돼지의 심장을 57세 남성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최근 이종이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데는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의 공이 크다. 이종간 면역거부반응은 이종이식 연구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됐다. 그런데 유전자가위 기술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월 메릴랜드대 연구팀이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한 사례의 경우 10개의 유전자가 편집된 형질전환돼지를 이용했다. 이 환자는 수술을 받은 지 두달만에 결국 숨졌지만 보고서는 이번 시도가 이종장기 이식 연구에 대한 가능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종이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같은 각국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해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국 앨라배마대와 메릴랜드대 의료센터가 각각 돼지의 신장과 심장 이식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넨바이오, 옵티팜 등 일부 바이오 기업이 이종이식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제넨바이오 관계자는 “아예 새로운 분야인 이종이식의 성공 사례는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된다”며 “식약처가 임상시험을 승인할 때도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제넨바이오는 7월 18일 임상1상 시험계획에 대한 보완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하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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